부과제→팀제→역할제…직급체계의 새로운 대안 '레벨제'

입력 2023-02-21 16:49  


최근 들어 직원의 전문성에 기반해 인사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전문성 수준을 판단해 레벨을 부여하고 이를 직원성장과 보상 등에 연결하는 방식이다. 네이버 ‘성장레벨’, 카카오 ‘스테이지 업’, LG CNS ‘기술역량레벨’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명칭은 다르지만 통칭해서 '레벨제'라 부를 수 있다. 레벨제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입장은 아직까지 조심스럽다. 레벨제가 자신들의 조직에 맞은 방식인지, 레벨제를 도입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둘지를 가늠해보는 상황이다. 과연 레벨제는 무엇이며 기업들은 왜 레벨제 기반의 인재관리에 주목하는 걸까?

과거 대다수 국내기업은 '부과제' 직급을 사용해 왔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순으로 직급단계를 구분하는데, 부장은 부(部)를 맡아 다스리는 사람, 과장은 과(課)의 업무 책임자, 차장과 대리는 각각 부장과 과장을 보좌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식이다. 부과제 직급에서는 위계와 일사불란함을 강조한다. 각 직급에 머무르는 최소한의 근속년수가 있고 이 기간을 채워야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 자격이 주어진다.

한편 오늘날 가장 널리 운영되는 조직형태는 팀제다. 팀제는 위계보다는 팀원 개개인의 책임과 자율성을 강조한다. 한국기업 역시 팀제를 통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업무구조를 팀원-팀장으로 간소화하여 업무 속도를 높이고자 했다. 하지만 문제는 직급체계에 있었다. 팀제 속에서 여전히 부과제 직급을 사용하다 보니 기대와 현실이 상충했다. 팀제를 통해 신속한 업무처리와 빠른 의사결정, 개인의 업무책임 강화를 기대했는데 부과제식 상하관계가 여전하다 보니 다단계 문화가 여전했다. 같은 팀원임에도 하위 직급자는 상위 직급자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고, 상위 직급자는 하위 직급자를 관리하는 걸 자연스레 여겼다.

팀제 하에서 부과제 직급이 맞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변화를 모색했다. 초기에는 직급보다 호칭에 관심을 가졌다. 팀원 간에 높고 낮음이 드러나는 다단계식 호칭이 수평적인 업무환경을 방해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오랜 기간 조직의 질서로 기능해 온 직급체계를 한 순간에 바꿀 경우 혼선이 생길 것을 우려해 기존 직급단계는 그대로 둔 채, 직급과는 별개로 호칭단계를 줄이거나 하나의 호칭만을 사용하는 소위 ‘호칭파괴’를 시도했다. 상·하급자 구분없이 이름 뒤에 '~님', ‘~매니저’와 같이 단일 호칭으로 부르는 식이다.

호칭파괴는 딱딱한 조직문화를 해소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하지만 오래동안 자리잡은 위계적 일하는 방식을 극복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나는 부장인데 대리나 사원이 나를 ‘~님’이라고 부르니 기분이 언짢다”, “타 부서와 일할 때 모두 ‘~매니저’라고 하니 상대방이 무슨 급인지 몰라 어떻게 대할지 불편하다” 등과 같이, 겉으로는 동등하게 부르지만 과거의 직급체계에 갇혀 지위고하를 따지는 문화가 여전했다.

호칭 변경만으로 수평적 업무환경을 만들기 어렵다고 느낀 기업들은 본격적으로 직급체계 개편에 나섰다. 대다수 기업은 ‘역할’에 주목했다. 역할에 관심을 둔 이유는 성과주의와 관련이 있다. 성과주의는 조직에 더 많이 기여한 구성원에게 보다 많은 보상이 돌아가도록 운영하는 방식이다. 이에 보상의 크기를 결정하는 직급은 맡은 일의 크기나 기여 정도, 즉 역할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역할을 기준으로 직급을 나누기 시작했다.

역할을 기준으로 직급을 나누다 보니 직급단계는 자연스레 줄었다. 팀 내 역할은 원칙적으로 팀장-팀원으로 나뉜다. 다만 회사에 따라 팀원들이 감당하는 역할 크기에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경우가 있어, ‘팀원-(선임 팀원)-팀 리더’와 같이 2~3단계로 직급을 축소하는 게 보편적 흐름이다. 현대자동차 ‘G2-G3-G4(리더급)’, SK텔레콤은 ‘A-B(팀장급)’ 등이 대표적인 역할 중심 직급축소 사례다.

역할 기반 직급체계는 일과 성과 중심으로 인사운영 인프라를 전환했다는 의미가 있다.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직급에 맞는 역할을 인지하고 책임지는 업무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더불어 직급단계를 간소화해 수평적 일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가장 큰 이슈는 한 직급에 머무는 기간이 상당히 늘어난 점이다. 부과제 직급에서는 한 직급에 머무는 기간이 3~5년 정도다. 반면 3단계 이하로 줄어든 역할 중심 직급에서는 한 직급에서 7~8년 이상 머문다. 한 직급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구성원들은 자칫 조직에서 정체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에 역할 중심 직급체계로 변화한 조직에서는 구성원에게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레벨제에 관심이 높아진 또 다른 배경에는 애자일 조직이 있다. 최근 들어 경영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고자 애자일 조직으로 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애자일 조직은 부서간 경계없이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조직 형태로 필요에 따라 수시로 조직을 ‘뗐다 붙였다’ 변경한다. 고객 니즈나 경영환경에 맞춰 빠른 시도-실패-피드백-업데이트를 반복하여 업무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방식을 추구한다. 이에 전통적인 관리자가 없는 수평적 협업구조를 지향한다.

애자일 조직에서는 누가 조직의 관리자인가보다는 누가 일을 잘 하는가가 중요하다. 일을 기획하고 아이디어를 주도한 사람이 리더가 되고, 함께 일하는 구성원은 각 전문성에 맞게 자발적으로 뭉쳤다 흩어진다. 결국 애자일 조직에서는 기존 직급체계의 높낮이가 중요치 않다. 누가 일을 잘 하고 전문성이 있는가가 중요한 화두다. 결국 구성원에게 새로운 성장모델을 제시하는 한편, 애자일 조직에 맞는 인사운영 인프라를 모색하는 측면에서 전문성을 측정하고 이를 인사운영에 반영하는 레벨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레벨제는 구성원이 보유한 전문성에 초점을 둔다. 구성원이 자신이 속한 사업이나 시장 또는 직무에서 어느 정도 전문성을 보유한지를 판단해 ‘입문자 - 사내 전문가 - 업계 최고 - 글로벌 최고’ 등과 같은 레벨을 부여한다. 레벨이 높을수록 직급과는 관계없이 리더나 상위 역할을 맡는 기회가 주어진다. 높은 연봉이나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받기도 한다.

레벨제의 가장 큰 장점은 수평적 문화와 능력주의를 함께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직급을 단순화하면 수평적인 소통을 활발히 할 수 있다. 다만 승진이나 보상인상 같은 성장 유인책이 줄기 때문에 조직 내에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레벨제는 성장기회가 줄어든 직급체계 속에서도, 전문성 레벨, 스테이지 등 새로운 성장단계를 통해 구성원의 성장 니즈를 계속 충족시킬 수 있다. 더불어 구성원에게 자신의 현재 전문성이 어느 수준이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알려주기 때문에 경력성장 가이드에 도움을 준다.

물론 레벨제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있다. 직급문화가 익숙한 국내 현실상 레벨을 곧 직급으로 여길 수 있다. 이로 인해 레벨제는 직급체계를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게 아니냐는 오해를 줄 수 있다. 전문성 레벨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가도 남아 있는 과제다. 직무 이동을 한 직원의 전문성 레벨을 판단하는 것도 남아있는 이슈다. 기존에 맡은 직무에서는 높은 전문성을 인정받았으나 생소한 직무로 이동할 경우 전문성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런 현실적 제약 때문에, 레벨제는 주로 인적자원이 보유한 기술적 전문성이 비즈니스 경쟁력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영역에서 도입을 고려하는 편이다. 디지털 기업의 기술직군, 첨단 제조기업의 연구개발 조직, 건설사의 엔지니어링 직무 등이 레벨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사례다.

조직에 맞는 직급체계를 모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직급체계는 조직의 질서로, 인사운영의 근간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보상수준의 기준을 제시하는 한편, 구성원의 성장 경로를 가이드한다. 이런 측면에서 수평적이고 민첩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직급체계 변화는 의미있는 시도다. 이 과정에서 직급단계 축소, 직급폐지 등과 더불어 레벨제는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레벨제가 직급체계를 대신할 완벽한 방식이라고 하기에는 섣부르다. 제약요건도 있고 해결할 과제도 남아있다. 다만 직급체계 개편과 더불어 개인의 성장 욕구, 전문성이 강조되는 조직환경을 고민하는 기업이라면 레벨제 도입을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

김주수 MERCER Korea 부사장 / HR컨설팅 서비스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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